1장 인문고전 독서의 힘

나라, 가문, 개인의 삶을 바꾸는 리딩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에게 금지된 것

지식교육을 버리라니, 이는 우리의 운명을 백인들에게 맡기고 그들의 사슬에 묶여 마냥 끌려만 다니는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 윌리엄 듀보이스( 1868~1963,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

인류 역사를 보면 항상 두 개의 계급이 존재했다. 지배하는 계급과 지배받는 계급. 전자는 후자에게 많은 것들을 금지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인문고전 독서였다.

21세기의 지구의 지배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선진국들은 인문고전 독서에 열심이다. 그런데 21세기 지구의 피지배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후진국들은 인문고전 독서와는 거리가 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어떠면 그것은 인류 역사의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동일하게 나타났던 지배계급의 의도가 아닐까?

그렇다면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에게 금지된 것은 무엇일까?"

초선진국이자 초강대국인 미국과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그 문턱으로부터 빠르게 멀어지고 있는 우리나라를 비교해보자.

미국은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인문고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레이트 북스 재단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인문고전 독서 프로그램 및 독서토론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일류 대학 수준의 강사진이 포진하고 있는 무료 인문고전 강좌인 클레멘트 코스도 있다.

미국 명문 사립 중고교의 인문고전 독서 열기는 놀라울 정도다. 1) 플라톤의 『국가』를 읽고 소화한다. 2) 도서관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주제로 집필된 모든 책을 찾아 읽는다. 3) 플라톤의 『국가』를 주제로 에세이를 쓰고 토론한다. 이런 식으로 인문고전을 한 권씩 철저하게 떼는 일이 미국의 명문 중고교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미국 대학들의 인문고전 독서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의 약 160개 대학에서 인문고전 100권 독서 프로그램이나 인문고전 독서 중심의 전공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 대학의 인문고전 독서 사랑의 진원지는 교수들이다.

우리나라 대학은 한때 세계 어느 나라 대학 못지않게 인문고전 독서에 열심이었다. 그런데 알다시피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인문고전 독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부자 교육 가난한 교육』이라는 책이 있다. 황용길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교육학과 부교수가 썼는데, 미국 부자계급의 교육이 빈자계급의 교육과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와 우리나라가 사실상 미국 빈자계급의 교육을 따라 하고 있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책을 보면 "고급 지식교육은 똑똑하고 능력 있는 아이들에게나 적당하다. 은행가의 자식과 광부의 자식이 필요로 하는 교육은 종류가 다르다"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나라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 교육평가론의 창시자 손다이크와 그의 추종자 매디슨 그랜트 등이 한 말인데, 그들은 진화론과 우생학을 신봉한 철저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끔찍한 사실은 이들이 미국의 빈자계급에 실시할 목적으로 만들어 실제로 오늘날 미국 공릭학교에서 시행 중인 교육과정이 그대로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현재 각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빈자계급을 위한 인문고전 독서과정인 클레멘트 코스의 창립자 얼 쇼리스는 『희망의 인문학』에서 미국 엘리트주의자들의 숨은 의도를 고발하며 그것을 분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문고전을 읽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두뇌의 수준은 그가 읽는 책의 수준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두뇌가 우수하지 못한 인간은 두뇌가 우수한 인간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류 역사의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지배계급은 그 사실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의 교육가정이 리더의 두뇌를 가진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문고전 중심의 사립학교 교육과정이 아닌, 공장의 부품 같은 두뇌를 가진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립학교 교육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육과정이 완전히 정착하고 나자 우리나라에서 인문고전 독서교욱 전통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초강대국에겐 뭔가 특별한 비결이 있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자신들이 다른 그리스인들보다 뛰어난 것은 지혜로 인한 것이 아니라 싸움과 용기로 얻은 것이라고 남에게 인식시키려 하였습니다. - 플라톤, 『프로타고라스』 중에서

동양의 정치·문화·예술 등이 고대 중국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서양의 그것은 고대 그리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대 중국과 고대 그리스의 공통점은 2000년 이상 살아남은,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각국의 석학들에게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문학·역사·철학 고전을 배출한 국가라는 것이다. 또한 당시에 세계 최강국이었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스파르타는 육체만 단련하지 않았나? 그럼에도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중 가장 강한 국력을 자랑했다." 그런데 플라톤의 『프로타고라스』에 따르면 스파르타는 체육보다 철학을 더 사랑했다. 탈레스, 솔론 같은 고대 그리스의 7현인이 부러워하고 칭송했을 정도록 최고의 철학 및 변론 교육을 실시했다.

고대 그리스의 뒤를 이어 고전을 깊이 사랑한 국가는 로마였다. 로마의 지배층은 서재를 인문고전으로 가득 채우고 그리스 고전 형식의 책을 집필하는 것을 취미나 직업으로 삼을 정도로 고전을 뜨겁게 사랑했다.

유럽인은 10세기까지만 해도 아랍인으로부터 미개인 취급을 받았다. 아랍은 화려하고 세련되고 진보했던 반면 유럽은 그 반대였다. 아랍이 유럽을 몇 단계 앞서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열렬한 인문고전 독서 덕분이었다. 아랍에서는 왕들이 나서서 인문고전을 애독했고, 국가적으로 인문고전 번역 사업을 실시했다. 유럽은 1085년 아랍이 300년 넘게 지배하고 있던, 당시 이슬람 문화의 중심지 톨레도를 수복하고 1102년에는 발렌시아를 탈환했다. 이 과정에서 유럽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리스 로마 고전의 세계와 접촉했고 그것은 미개했던 유럽을 영원히 바꾸어놓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을 집필한 리처드 루빈스타인의 표현에 따르면, 격리된 시골의 한 지역에 불과했던 유럽은 세계 문명의 중심지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중세 유럽의 도시국가들 중 가장 강력하고 부유했던 곳은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치다. 그곳의 정치인·지식인·금융인들은 인문고전 광신도였다. 피렌체를 통치한 메디치 가문은 자녀에게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실시했다. 메디치 가문의 행보는 피렌체의 정치인과 금융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금융인들은 세계 각지로 사람을 보내 인문고전 원전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고, 정치인들은 학자들이 인문고전 원전을 번역하는 일에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피렌체는 고대 아테네에 버금가는 명성을 지닌 위대한 도시가 될 수 있었다.

근대에 들어서 가장 강력한 힘을 자랑한 국가는 영국프랑스다. 미국의 명문 사립 중고교와 대학의 인문고전 독서교육 전통이 전부 영국에서 비롯되었다. 영국의 상류층은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교육을 받고 엘리트가 되었다.

  1. 가정교사에게 기초적인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받는다.

  2. 명문 사립학교에 진학해 체계적인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받는다.

  3.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에 들어가서 그리스어 및 라틴어로 진행되는 인문 고전 수업을 듣고, 그리스어 및 라틴어로 에세이를 쓰고 토론한다.

프랑스의 인문고전 독서교육 전통도 영국 못지않다. 프랑스의 중고교는 '철학 학교'라 불릴 정도로 철학교육을 중시한다. 프랑스의 대학은 파리 제1대학과 같은 일반 대학과 엘리트 중의 엘리트만 들어가는 그랑제콜로 나뉘는데, 그랑제콜에 입학하려면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자유자재로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수업이 인문고전 강독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인문고전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영하던, 중세 유럽 대학들의 모델이자 현대 대학의 원형인 파리 대학의 발생지이고, 아이비리그 졸업생 이상의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1790년대부터 고등학생들의 인문고전 교육을 책임진 나라다. 또한 대학 입학시험에 출제된 철학 문제가 전 국민의 화제가 되고, 평범한 시민들이 카페에서 심심풀이로, 우리나라나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대학교수 수준의 철학토론을 벌이는 국가다.

국력 신장을 위한 일본의 독서 프로젝트

인문고전 독서를 업으로 삼았던 사대부들이 지배층이었던 중국 및 한국과 달리, 비록 유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검술을 연마하는 것이 업이었던 무사들이 지배층이었던 일본은 대대로 중국과 한국에 머리를 조아려가면서 문물을 수입해갔다. 그런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아시아 최강대국으로 변신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했는데, 그 배경에는 국가적인 인문고전 독서가 있었다.

『번역과 일본의 근대』에 따르면 후쿠자와 유키치의 정신적 제자들이 세운 메이지 정부는 주도적으로 나서서 동서양 인문고전을 번역했다. 덕분에 일본은 19세기에 동양고전은 물론이고 서양고전의 대부분을 번역하여 국민에게 대량 공급할 수 있었다.

『죽으라면 죽으리라』에 등장하는 1930년대 일본 고등학교를 보자. 제1고교 학생들은 3년 동안 매주 열 시간 이상 외국어 수업을 들었다. 라틴어가 필수 공통과목이었고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중 두 과목이 선택이었다. 서양 고전 원전을 국어처럼 술술 읽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였다. 제2고교에서는 모든 신입생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고, 모든 재학생이 최소 하루 한 권 이상의 인문고전을 읽고 독서일기를 쓰는 전통이 있었다. 여러 자료에 따르면 당시 일본의 명문 고교와 대학교 학생들은 독서일기를 쓰는 습관이 기본적으로 배어 있었는데, 고교와 대학 시절 동안 4000권 이상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사례가 평범한 경우에 속할 정도로 치열하게 독서했다고 한다. 덕분에 일본의 정계·관계·재계는 이미 학창 시절에 그리스,로마,유럽,중국,인도,일본의 인문고전을 읽은 인재들을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었고, 국력을 혁명적으로 신장할 수 있었다.

일본이 메이지 시대에 국가가 나서서 엄청난 분량의 인문고전을 국민에게 공급할 때 우리나라도 외무아문에 번역국을 설치했다. 그라나 15년간 고작 스무 권 남짓한 책을 번역했다. 그 결과 우리는 일본에 문물을 전해주던 문화 선진국에서 문화 후진국으로 전락했다.

우울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과거 우리 조상이 그랬던 것처럼 일본의 존경을 받는 나라를 만들려면, 우리 국민 개개인의 두뇌 수준이 일본 국민 개개인보다 월등하게 뛰어나야 한다.

중국 황실이 두려워했을 정도로 조선 역사상 가장 강대한 국가를 건설했던 세종대왕은 백성 개개인의 두뇌 수준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인문고전 독서에서 찾았다. 1434년 7월, 세종대왕은 30만 권 분량의 종이를 준비하라는 영을 내렸다. 『자치통감』을 대량으로 인쇄해 전국에 배포하기 위해서였다.

세종대왕 시대와 달리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이고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러니 나라를 바꾸고 싶다면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인문고전 독서의 영을 내려라. 그리고 치열하게 독서하라. 그러면 오래지 않아 당신 자신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완벽하게 바뀔 것이다.

법조인 130명 vs 전과자 96명

인문고전 독서는 국가와 가문의 운명뿐 아니라 개인의 운명까지 결정짓는다. 조너선 에드워즈는 벤저민 프랭클린보다 미국에 더 위대한 영향을 끼친 존재라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조너선 에드워즈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아버지로부터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받았다. 미국 뉴욕시 교육위원회에서 조너선 에드워즈와 그와 같은 지역에 살고, 같은 경제력을 가졌고, 같은 수의 가족이 있었던 마커스 슐츠를 5대에 걸쳐 조사했다. 영적으로 『성경』을 삶의 지표로 삼고, 지적으로 인문고전 독서에 힘쓰는 전통을 후손에게 물려준 에드워즈와 달리 슐츠는 『성경』에 무관심하고 인문고전 독서에도 문외한인 전통을 물려주었다.

조너선 에드워즈의 후손은 896명 중 130여명의 법조인이 나왔다. 마커스 슐츠의 후손 1062명 중 전과자가 96명이었다.

인문고전 독서는 나라와 가문과 개인의 운명을 결정짓는다. 무언가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느껴지거든 낙담하거나 한탄할 시간에 인문고전을 펴길 권한다. 천 년이 넘은 지혜의 산삼을 두뇌에게 실컷 먹이기를 권한다. 그러면 언제가 반드시 당신 자신이 혁명적으로 변하고, 당신 가문에 인문고전 독서의 전통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가문에서 배출된 인재들이 우리나라와 세계와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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